해운대 엘시티의 '통 큰 양보'와 '공정 개발'
초고층 복합단지 건설 따른 인근 교통대란 불보듯 뻔해
예상이윤 3분의 1이라도 문제 해결에 쓰도록 만들어야
한 달가량 전, 굿 뉴스가 들려왔다. 부산 해운대 모래밭 바로 옆에서 진행 중인
엘시티(101층 1동 및
85층 2동을 짓는 초대형 건설계획) 사업에
대한 중국 건설사(CSCEC)의 포기 소식이었다. "부산
시민을 위해 포기한다"는 그들의 발표가 반가우면서도 그 말 속에 담긴 저의가 궁금했다. 추정하건대 부산의 심장부를 중국에 내준 부산 시민의 심적·정신적 후유증을 이해하고, 중국과 판이한 건설 과정에 대한 부담감이 포기의 주원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들은 사업시행사의 표현대로 '통 큰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추정은 교통기반시설 추가 설치와 보강 없이 추진되어 어찌 보면 난개발에 가까운 사업이기에 세계 1위 수주실적을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의 명성에 미칠 악영향과 예상되는 여러 비판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맞건 간에, 3조
원의 재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건설 사업이 이리도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중국 건설사의 포기 선언 후, 단
10일 만에 사업 승계를 위한 국내 건설사가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P건설사'다. 속전속결이다. 이미
준비되었거나 내정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여러 의문은 남지만,
해운대의 중심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안타까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점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사실 P건설사는 센텀시티에서 그리고 제일제당이 떠난 서면에 초대형 아파트 단지를 개발했던
부산과 인연이 깊은 건설사다. 그래서 P건설사에 간곡한 부탁을
하고 싶다. 건물만 달랑 짓고 이윤만 챙기는 그런 부도덕한 건설사가 되지 말기를 요청하고 싶다. 물론 이 부분은 투자와 분양을 책임지는 사업시행사에 해당하는 것인 줄은 안다.
하지만 시행사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시민에겐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민에게 잘 알려진 P건설사에 부탁하는 것이다. 부산 시민이 두고두고 고마움과 감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결과를 남겨주길 바란다. 그러면 P건설사는
부산의 진정한 향토기업으로 영원히 시민 사랑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P건설사가 엘시티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엘시티는 우리나라 지방도시에서는 유례없는 초고층 복합단지다. 연면적이 무려 66만6077㎡인 초매머드급 건물 덩어리다. 장엄해 보일 것이고 화려해 보일 것이다. 명품 쇼핑몰과 백화점, 각종 리조트 시설과 실내형 테마파크, 그리고 고급 아파트와 호텔로
채워질 것이다. 분양을 받기 위해 외부 자본들이 몰려오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주변 지역 경제도 확장될 것이다. 또 제대로 된 위락형 테마파크 하나 없이 살아온 지역민의
애환(?)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이 참 귀중하고 또 난해한 곳에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백사장과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해운대의 중심지다. 주변은 이미 개발이 되었거나, 엘시티의 완공을 기다리며 특수를 노리는 땅들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또한, 전체 개발규모에 비해 땅이 너무 협소해 보인다. 여유라고는 앞쪽으로
트인 해운대의 모래밭과 펼쳐진 바다뿐이다. 그마저도 시민 모두의 공간이다. 해운대 지도를 바꾸고도 남을 규모의 엘시티는 단지 101층 1동과 85층 2동으로
된 3동의 건축물만을 짓는 일이 아니다. 물론 건축물의 안전이나
품질은 국제 수준일 것으로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엘시티로 인해 발생할 하루 1만여 대의 차량이 오갈 도로나 교통기반시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교통영향평가를
받지 않은 관계로 오로지 건물밖에 생각지 못하고 있다. 엘시티 완공 후 발생할 수 있는 악영향에 관한
검토와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 건물만 지어진다면 분명 해운대는 초과밀에 혈관이
막힌 동맥경화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중증으로.
서울시의 지난 행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제2롯데월드는 개발 후 발생할 교통문제 해소를
위해 사업자(L그룹) 측에
2700억 원을 투자하도록 했다. 서울과 부산은 왜 이처럼 다른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는 도시이고 더군다나 이곳은 해운대라는 아름다운 부산의 보고인데. 새로이 국내 건설사가 선정된 지금, '대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엘시티 완공 후 발생할 지역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부산시의 적극적인 판단과 해소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외곽도로와 엘시티를 직접 연결하는 지하도로 개설과 같은 혁신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소 지역 간선도로와 연결되는 도로 신설이나 해운대 전체의 교통체계와 도로구조 개선에
대한 실천이 추진되어야 한다(단,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는
절대 손대지 말아야한다. 이곳은 시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익을
위해 어떤 이유로도 이곳만큼은 넘보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성과 시민 중심의 사고를 하는 전국의
교통 전문가를 집합시켜야 한다.
대략 1조 원의 순이익을 예상하는 개발사업자 측(사업시행사와 P건설사)이 문제 해결에 따른 발생 재원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정커피와 공정여행처럼 이익 주체가 해당 지역의 문제를 책임지는 '공정개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중국 건설사가 보여주었다는 '통 큰 양보'를 개발사업자 측도 보여주어야 한다. 양보를 받았다면 그 양보를 지역민과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산
시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그런 개발사업자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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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부산시는 예상 이윤의 3분의 1만이라도 공적 자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는 하지 않았는가. 해운대의 현재 상황은 서울 잠실보다 더
악조건이다. 시민을 위한 행정 행보를 진정으로 보고 싶다. '통
큰 양보'를 논할 수 있는 장(場)을 최대한 빨리 만들길 바란다. 그래서 '마천루의 저주'라는 미국의 낡아빠진 이론을 과감히 깨버리는 그런
엘시티가 되어 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2015.5.29. 국제신문